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 핼러윈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날만큼은 마음껏 괴이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굴어도 ‘괜찮은’ 날이라 좋았다. 나처럼 수용을 갈망하는 인간들은 매년 핼러윈마다 이태원에 모였고, 별나면 별날수록 서로를 더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10월 마지막 주면 응당 이태원을 찾은 지가 10년쯤 되었다.
매년 핼러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느덧 2023년 핼러윈도 지난 지금,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남아진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올해도 이태원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으로 삶이 거세된 이태원을 봤다. 취재진과 공무원들만 시간을 죽이는 썰렁한 거리가 꼭 다시는 이날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겐 그 냉랭한 고요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덮기엔 쓰리고, 닥치기엔 억울해서 나는 ‘놀았다’. 나의 행복한 2023년 10월 29일처럼, 2022년 10월 29일에 그곳에 있었다는 게,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게 죽음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아직 추모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황망한 죽음이 나를 간신히 스쳐갈 때마다 혼란스러울 뿐이다. 기억하는 일도 괴롭다. 그럼에도 삶으로 기억을 보전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믿는 까닭은, ‘그날 밤을 기억하는 모두의 오늘이 안녕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9년이 지났습니다. 참사 당시 생존자였던 고등학생이 심리상담사가 되고 응급구조사가 되는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국가는 그동안을 허투루 보낸 듯 안타까운 일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잊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어 Team.MOi는 안산을 찾았습니다.
기억문화제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참석했습니다. "아홉 번째 봄을 맞는 엄마를 첫 번째 봄을 맞는 엄마가 만났다"라는 말이 가슴 아팠습니다. 현장의 여러 모습과 제 생각을 기록해 보았습니다.
우리 함께, 끝까지, 잊지 맙시다.
영상 속 노래 가사 전문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 시 이상현, 작곡 이범준>
바다가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4월이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재잘대던 꿈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던 날
부푼 가슴이
푸른 하늘에 둥실 떠다니던 날
우리 꿈 우리 가슴
회색빛 아픔 되어 가라앉았죠
초록 영그는 제주의 향기
엄마에게 건네고 싶었죠
먼 길이 아닌데
돌아오지 못할 길도 아닌데
초록 영그는 그곳에 닿지 못하고
바람이 되었죠
별이 되었죠
바람불면 말해요
별을 헤며 말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가슴 시리게 사랑해
2014년 4월 16일, 여전히 그 날을 기억하는 Team.MOi의 2023년 4월 16일 기록.
내 발등에는 ‘0416’이라는 네 숫자가 새겨져 있다. 오른팔에는 ‘기억’을 새겨 넣었다. 평생 그들의 안녕을 바란다는 나의 다짐이다. 가장 바삐 움직이는 두 신체의 다짐은 ‘우리의 안녕’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한 나라를 절실히 갈망했다. 우리의 소망이 무색하게 작년 10월 29일에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났다. 소원은 늘어나지 않았다. 딱 하나, 여전히 ‘당신의 안녕’이다.
영상 속 시 전문
<기억은 우리를 - 정옥다예>
마지막과 맞바꾼 설렘
상실이 불러온 죄책감
바다로 흘러가는 봄 내음
기억은 나를 얼마나 망가뜨릴까
가장 낮은 곳에 새긴 네 숫자는
달력 한 장 넘기지 못하게 하고
한 걸음마다 흔들리는 리본은
다급한 뜀박질을 멈추게 하는데
기억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엉켜 넘어지던 그 발에 파도가 출렁였음을
가을 냄새는 그 짭짤한 봄과 같았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