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i의 시선]에서는 Team.MOi 멤버가 전달자로서 영상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
<삼남쑈> 시리즈 보러 가기
정공법이 잘 맞는 나에게 갈고 닦을 무기는 ‘솔직함’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들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 삼남은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서도 손꼽히는 매력쟁이다. 처음 그를 만날 때, 나는 좋은 인상을 위해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그 즉시 삼남에게 손을 잡혔고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반짝이는 눈빛을 목도한다. 꾸며내는 것은 진짜를 따라갈 수 없음을 여기서도 느꼈다. 내 웃는 얼굴은 꾸민 것이었는데, 삼남이 너무 반갑게 맞이해 준 덕에 진짜로 활짝 웃는 얼굴이 되었다. 서로의 가시가 부대끼는 선인장 숲 한복판에서, 동글동글 생기있는 삼남의 눈빛은 금세 나를 그의 친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쾌활한 언변에 빠르게 매료되었다.
“우리 아저씨는 영국 신사 같었어, 영국 신사”라는 발언에 청중이 젠틀맨을 상상하는 순간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라고 말하며 모두를 뒤집어지게 만드는 그의 입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멘트에 크게 웃어도 되는 걸까’ 싶은 아찔한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처음 만나는 손녀뻘의 사람들에게 이미 고인이 된 남편의 이야기를 매콤하게 볶아주는 이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시원시원한 삼남의 입담과 달리 그가 살아온 삶은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엔 온 사회가 나서 여자가 공부하는 길을 막았다. 중매를 통해 만난 남편은 평생 ‘못 배운 것’으로 그를 서럽게 만들었다. 내내 웃는 얼굴로 삼남의 이야기를 듣던 내가 고장 난 듯 멈칫한 순간은 바로 그가 남편에게 당한 폭력의 기억을 들려줄 때였다. 그것은 흔한 시대상으로 치부될 만한 것도, 한바탕 욕지거리로 해소될 이야기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삼남의 집 거실에는 가족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사진 속 온화한 미소를 띤 삼남의 남편이 갑자기 미워졌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인상이 좋으시다고 생각했더랬다. ‘거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나는 실망스러운 눈빛을 평면의 그에게 쏘았다. 물론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다.
싸늘할 정도로 아픈 이야기지만, 삼남은 그저 스쳐 지나가듯 언급하고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는 것뿐이었다. 못 배웠다고 무시당할 때마다 서러웠던 것, 혼자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힘들었던 것, 작은 것 하나 거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분명 그의 생에 짙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삼남은 흔한 가부장의 굴레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일날 남편이 떠난 것을 ‘선물’이라고 말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질어질) 오히려 남편이 먼저 떠난 뒤 자신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당당히 말한다.
여성에게 얌전하고,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강요하던 시대를 통과한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행복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긴 시간 동안 외롭고 서러웠을 삼남이 여전히 밝고 사랑스러운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괜스레 고맙다. 빛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쩌면 나와 친구들의 미래도 저렇게 밝고 사랑스러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내 친구들도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여자로 태어나서 원치 않게 위축되는 일이 많다. 나는 그런 저항을 겪을 때마다 잔뜩 성을 내고, 모두가 미워져 날카로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욕쟁이 할머니 엔딩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토록 생기 넘치고 밝은 할머니라니.
웃음소리가 막다른 골목을 가득 채울 만큼 호탕했던 시간이 지나 (그야말로 삼남쑈), 삼남과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잠시였지만 나는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좋다. 인생의 쓴맛을 대화의 풍미로 블렌딩할 수 있는 유쾌한 어른. 게다가 삼남은 자기 취향이 확고한 멋쟁이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누구보다 멋진 포즈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남 할머니와 Team.MOi멤버들이 사전 미팅을 마치고 찍은 사진. 멋지게 다리를 꼰 할머니를 중심으로 팀원 네 명이 둘러앉아 다함께 ‘갸루피스’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글 효비
사진 Team.M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