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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는 방울방울

Created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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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i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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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7
지역
문화
민주주의
[MOi의 시선]에서는 Team.MOi 멤버가 전달자로서 영상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떠나거나 지키거나> 보러 가기
어느새 원주 청년으로 나를 소개하는 데 익숙해졌다. 원주살이 5년 차, 확실히 전보다는 원주에 소속감이 느껴진다. 이 지역에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지리에 익숙해지면서 묘한 안정감도 든다. 서울과는 차로 1시간 30분 거리, 인천에서 종로를 가는 시간과 원주에서 서울역 가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강원도 지역이기 때문인지 원주는 강원도 안에서 알아주는 ‘도시’다. 나름대로 원주는 도내 최다 인구, 도내 최다 일자리, 서울역과 바로 연결되는 기차역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공무원 청렴도는 도내 최하위권인, 시내버스 회사는 줄줄이 도산하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도시이기도 하다.
[ 원주 TMI ]

진짜 현실 지방러의 삶

원주에 살면 실제로 많이 불편하다. 시내버스의 평균 배차간격이 30분 이상이고, 하루 4~5회 밖에 운행하지 않아서 도시 전설처럼 느껴지는 노선도 있다. 약속 시간을 지키려면 택시를 타기 십상인데 그러면 당연히 금방 거지가 된다. 분명 서울보다 주거비용은 덜 들지만, 다른 비용이 많이 들어서 이득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화 활동을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하고, 뭐라도 배우려면 서울로 가야 하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서울로 가야 한다. (마른세수)
특히 이주자인 나는 대부분의 친구가 서울에 있는데, 그들을 만나려면 계획이 필수다. 미리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해야만 기차를 예매할지 버스를 예매할지 정할 수 있다. 차 시간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날은 반드시 택시를 타게 된다. 기본적으로 2시간 이상의 여정을 통해야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늦게 끝나는 일정이라면 잘 곳도 미리 구해야 한다. 막차로 돌아오면 집에 갈 택시가 한참 동안 잡히지 않아 추위에 떨기도 한다. (조금 젖은 세수)
지도 어플로 대중교통 경로를 조회한 화면 캡처. 버스 배차간격이 시간이 아닌 횟수로 안내되어 있다.
← 원주에서 버스를 타려 할 때.jpg
비수도권인 것 외에도 원주는 특별히 구린 점이 많은 동네 같다. 하지만 이 지역에도 예쁜 구석은 있었다. 나는 신축 건물에 들어선 프랜차이즈보다 구옥을 개조한 개인 카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라서, 원주에 있는 작은 카페와 책방에서 위안을 얻곤 했다. 공간에 애정을 담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다들 아닌 척하면서 원주를 꽤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한 책방 사장님을 따라 아카데미극장에 처음 들어가 봤다. 아카데미극장은 ‘잘 만든 영화’ 같은 곳이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과 생각거리를 주는 걸작의 느낌이다. 나는 원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다. 평소엔 갈 일이 없었던 구도심을 자주 찾게 되면서 원주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알게 되었다(우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아카데미극장 덕분에 원주에 친구들이 생겼고, 덕분에 원주에 사는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

이 구린 동네에서 만난 ‘친구들’

우현은 내 원주 친구 중 하나다. 우현과 처음 연락한 건 지역 신문에 실을 아카데미극장 관련 글을 써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을 때다. 나는 글을 보냈지만, 한참이 지나도 내 글은 신문에 오르지 않았다. 한 달이 넘어가자 글에 적은 내용이 너무 뒷북이 될까 걱정한 나는, 이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아카데미의 친구들’에 연락했다. ‘아친’에서 이것저것 맡아서 하고 있던 우현은 나에게 이 이슈가 지역 내에서 다소 민감한 주제처럼 다뤄지기 때문에 관련 기사가 잘 올라가지 않는 상황을 설명해 줬다. 취재를 해가도 기사가 나지 않고, 제대로 보도하는 곳도 드물다고 했다. 무슨 시청 눈치 보느라 시민 기고도 못 싣는 언론이 있나 싶었다. 원주의 생리를 지금보다 모르던 때였다. 나는 우현의 설득에 기고를 취소하려던 마음을 바꾸고 조금 더 기다렸다. 그리고 몇 주가 더 지나서야 내 글은 신문에 올라갔다.
그때 쓴 글에 나는 원주에 뒤늦게 반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며, 내가 원주에 반한 데에는 아카데미극장을 되살린 시민 행동의 영향이 크다고 적었다. 말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아카데미극장(2006년 폐관)은 시민 모금과 재생 활동으로 살아났다. 시민들은 프로젝트를 꾸며 돈을 모으고, 공간 활용에 관한 포럼과 연구용역도 진행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옛 모습(1983)
시민의 움직임에 시도 응답했다. 2022년까지만 해도 원주시는 시비를 들여 극장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극장 폐관 이후 원주에 온 나도 극장에 들어가 볼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고 원주시는 돌연 사업을 중단, 논의 과정 없이 극장 건물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극장 재생 사업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철거를 강행한 원주시장은 요즘 1000억 원을 들여 원주에 ‘강원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고 떠들고 있다.)
우현은 아카데미극장 문이 열렸을 때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면서 극장의 이야기에 반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먼지 쌓인 극장에 불을 켜고 이런저런 일을 벌일 때 우현도 함께였다. 투어를 진행하고, 아카데미극장에 대해 글을 쓰고, 자료를 아카이빙했다. 그때 이야기를 하면 우현은 꽤 즐거운 표정이 된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슬프게도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과 철거강행은 한 사람의 기획자를 투쟁꾼으로 만들고야 만다. 우현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혹시 이 메뉴가 조금 번거롭다면 다른 메뉴로 주문할게요.”라고 말하는 수줍음의 결정체 같은 사람인데, 아카데미 투쟁 앞에서는 악을 쓰며 구호를 외친다. 다른 아친들도 비슷하다. 고양이 좋아하는 사진관 아저씨가 시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문화 기획하던 사람들이 집회 프로그램을 짠다. 아이 키우는 책방 사장님들이 행진에 앞장서고, 예술인들이 농성장을 지켰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는 동안 참 다양한 일이 있었다.
현수막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현수막엔 ‘위법철거 중단하고 등록문화재 지정 협조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현수막 뒤로 이어지는 행렬 속 사람들이 색색의 풍선을 들고 있다. 현수막 옆에는 야마가타 트윅스터(뮤지션)이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시민과 함께 걷고 있다.

‘아직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지 않았어.’

가끔 우현은 극장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시장이 너 진짜 없애려고 해. 네 안에 있는 뭐라도 좀 어떻게 해봐..”
(우현이 전에 극장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해준 적 있다.)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싼 철제 공사 가림막 사진. 쇠사슬로 막힌 입구엔 ‘극장 안에 사람 있어요/사람 살려/아카데미 살려’라는 손 글씨가 적힌 대형 천이 걸려있다. 벽면 곳곳에 시민들이 붙인 손 글씨 피켓과 시청에서 붙인 ‘출입 금지’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 있다.
공사용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아카데미극장 전면을 넓게 찍은 사진. 하늘은 흐리다. 주황색 가림막이 반쯤 흘러내려서 극장 상부가 드러나 있다. 극장 앞 버스 정류장은 ‘원주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라고 적힌 현수막에 가려져 있고, 그 앞에 승용차 2대와 구급차 한 대가 서 있다.
물론 극장이 대답하는 일은 없었지만, 우현은 극장이 마치 ‘아직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지 않았어.’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공론장을 만들 수 있도록 극장도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극장은 정말 더 많은 사람이 모일 때까지 버텼다. 전국에서 연대의 손길이 닿았고 영화인들이 찾아와 극장 보존을 외쳤다. 우현은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동을 할 때,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를 떠올렸다고 했다. 극장이 다시 열리는 때를 피어나는 꽃처럼 생각한 것이다. 극장이 사라지고 얼마 뒤 서로의 상처를 살피던 때, 우현은 꽃이 한 송이가 아니라 꽃밭일 수도 있었겠구나, 깨달았다고 말해주었다.
[우현의 글]
2016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극장 보존 시민 활동은 2023년의 추운 겨울에 일단락되었다. 원주시장은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의회에서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공무원을 동원하고 용역을 고용해서 시민을 몰아낸 뒤 극장을 부쉈다. 원형이 보존된 국내 최장수 단관극장을 말이다. 2023년은 극장 개관 60주년이었다. 문이 열렸을 때의 아카데미극장은 정말 아름다웠다. 통유리로 들어오는 햇살이 로비를 밝히고 영사실에서 밝힌 스크린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들렸다. 멍청한 시장 때문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지만, 건축사로 보나 영화사로 보나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는 역사에 남을 오판이다.

우현은 방울방울

올해 많은 순간을 함께했던 나와 우현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경찰이 불법으로 규정하고 행인이 빨갱이로 낙인찍는 동안 길바닥에서 함께했으니 각별해질 수밖에.
우거진 나무를 배경으로 우현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우현은 여러모로 신기한 사람이다. 비눗방울 놀이를 좋아하고, <어린 왕자>의 구절을 외우고, 좋아하는 공연 얘기를 할 때는 눈이 빛난다. 불통 시장에 관해 얘기할 때는 투사가 되었다가,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면 솜사탕처럼 가벼워진다. 찬 바람 부는 겨울 원주시청 앞에서 노숙할 때는 대뜸 찾아와 극장철거를 양해하라는 시장에게 왜 원주에 머물려는 청년이 없는지, 아카데미극장이 얼마나 멋진 장소인지, 시정 운영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도 했다. (단호한 표정으로 시장을 쏘아붙인 당시 우현의 손에는 오리 인형이 들려있었다.)
우현은 많은 순간 해맑게 어린아이처럼 말하다가 별안간 날카롭게 변한다. 나는 우현이 변할 때마다 같이 변한다. 뱁새모드(필자는 우현이 뱁새랑 닮았다고 생각한다)일 때는 우현의 머리를 만지작거리거나 말투를 따라 하며 놀리다가, 예민우현이 나타나면 오줌을 지리지 않기 위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공간에 남은 이야기가 얼마나 멋진지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아카데미극장이라는 기적을 봐버렸으니 말이다. 원주를 싫어하는 동시에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다. 어떻게 먹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걸 하고 싶은 것도 닮았다. 커다란 아저씨들에 둘러싸이는 상황을 무서워하면서도 계속 투쟁하는 것도 똑같았다.

우리에게 남은 건 사람뿐이니까

극장이 부서지는 과정은 부당했고, 공권력은 시민을 처참한 상황에 몰아넣었다. 우현과 나, 친구들은 요즘 건설 중장비만 보면 가슴이 철렁하고 속이 뒤틀린다. 죽으라며 저주하던 목소리 때문에 시장 골목이 불편하다. 우리 중 26명은 업무방해 명목으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서로를 살피며 숨을 고르고 있다. 우리는 계속 원주에서 살아야 하니까. 어쩌면 모든 과정이 우릴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가끔 ‘아카데미극장이 없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모일 수 있었을까?’라는 이야기를 한다. 극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채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나에게 아카데미극장은 우현을 비롯한 원주 친구들을 알게 해줘서 고마운 존재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도 가늠이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에게 남았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람뿐이니까. 모두 함께 더 나은 원주를 상상하며 의견을 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 응원할 수밖에 없다.
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