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해원. 흰색 반소매를 입고 페스티벌에 참여한 해원이 잔디밭 위에서 무대를 등지고 서 있다.
그런 해원이 자신을 위해서, 넓게 보기 위해서, 같이 살기 위해서 관찰한단다. 스스로는 제 시선이 못 미더운 것 같지만, 나는 그가 가진 (혹은 가질) 시선의 훌륭함을 믿는다. 나와 그가 다른 만큼 더욱 확신한다.
또 해원은 대화 내내 나의 대의적 판단을 반사적으로 수습하느라 바빴다. 그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좋은 인간’으로 판단되는 일을 한사코 용납하지 않는다. 얼핏 냉정한 사람 같은데 실은 무척 뜨끈한 사람. 그래서 나는 해원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다고 생각한다. -무니지니-
Q.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해원입니다. 과묵한 사람이고 카메라 뒤를 좋아합니다.
Q. 과묵한 사람이요? 스스로 과묵하다고 소개하기 쉽지 않은데, 거짓말쟁이신가요.
아니에요. 진짜 과묵한 사람이에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삼거든요. 진짜 헛소리 같다. (웃음)
말 한 마디로 그르치는 일이 많잖아요. 애매한 말을 할 바에는 입을 다무는 게 나아요. 눈에 띄기도 싫고요.
내가 눈에 띄고 싶진 않지만 남을 관찰하고 싶은 뒤틀린 욕망이 있어서 안전한 카메라 뒤가 좋아요.
Q. ‘뒤틀린 욕망’, 얼핏 모순된 얘기 같지만 공감돼요. 뭘 관찰하고 싶어요?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무언가를 관찰하려는 건 아니고요. 사람은 어쨌든 같이 살아야 하는 동물이잖아요. 혼자 틀어박혀 있으면 자기만의 시선을 가질 수 없어요. 여러 시선을 관찰하다 보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고, 흉내도 내보고 하면서 제 것이 되니까요. 시선을 갖기 위해 관찰하는 거죠. 나를 위해서요.
Q. 갖고 싶거나 닮고 싶은 시선이 있나요? 어떤 시선을 지향하는지 궁금해요.
특별히 따라 하고 싶은 시선은 없어요. 한 가지만 가지고 있으면 결국 한계가 오니까요. 하나의 시선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요. 직업-영상 PD- 특성상 그러면 안 되기도 하고요 (웃음) 여러 시점으로 넓게 보고 싶어요. 카메라 뒤에 있는 일도 결국 제3자의 시선을 갖는 일이고요. 특정한 시선을 갖고 싶다기 보다는 계속 갈아타고 싶은 거죠. 그러려면 길을 많이 알아둬야 하지 않겠어요.
Q. 그럼 해원에게 '카메라 뒤에 있는 일’이란, 관찰을 통한 시야 확장의 수단이면서 결국 자신을 계발하는 일인 거네요. 어쩌다… 영상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까?
그러게요, 후회됩니다. (웃음) 사실 재밌어서 한 거죠.
원래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영상을 하기 전에는 글을 많이 썼어요. 필사도 하고, 일기도 쓰면서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개인적인 용도로요. 그러다 우연찮게 브이로그를 처음 만들어봤는데 되게 직관적인 거예요. 내가 다시 볼 때나 남이 봤을 때, 정말 쉽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공유성이 강하다고도 느꼈어요. 그래서 영상은 공유의 욕망도 충족시켜주는 가성비 기록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넓은 시선이든 기록이든 공유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거예요. 사람은 호랑이 같이 강한 생물이 아니라서 연결돼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다 연결되려고 하는 거죠.
Q.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도 될까요? 다양한 시선, 기록, 공유, 살아남기 같은 단어로요.
일단 안 해봤던 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요. 맥락은 비슷해요. 근데 아주 개인적인 방향으로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제가 대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요. 넓은 시선을 갖고 싶은 이유도 감정적인 공감 때문이라거나 누군가를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호기심에 가까워요. 휴머니즘 이런 거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죠.
얼척 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 저는 스스로 ‘미움 받을 만한 요소’ 그러니까 소수자적인 요소도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팔자가 좋습니다. (웃음) 혼자 ‘이렇게 팔자가 좋은데 이 정도밖에 못하나’하고 켕기는 건 있지만요.
누구나 다 하자가 있어요. 모두 다 하자를 가지고 있으면 그건 더 이상 하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Q.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척 공감하기도 하고요. Team.MOi가 만들 콘텐츠가 그런 해원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 콘텐츠가 어땠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은 사실 없겠지만, 넓은 시선을 갖고 싶다는 의도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제 목표는 항상 스킵 안 하는 영상을 만드는 거예요. 끝까지 보고 싶은 영상. (왜 끝까지 보고 싶은 게 중요할까요?) 그러게요. 나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웃음) 내가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읽히지 않는 기록은 의미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영상의 가장 큰 장점이 직관성과 공유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끼리만 만족하려고 기록하는 거면 굳이 영상으로 만들 필요도 없겠죠.
Q. 구구절절 영상쟁이답네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
이런 얘기 평소에 잘 안 해서 이야기가 되게 거창해졌는데요. (스읍) 거창해졌네요. 그렇게 됐습니다. 유감입니다.
승비: 뜨끈한 콩국수 하나 주세요.
정옥다예: 생각보다 더 웃기는 짬뽕
효비: 여긴 좀 숨쉬기가 편하네요.
하림: 깊게 베인 영상쟁이의 향기 ☕️
무니지니: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해원: …
취재 무니지니
글 무니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