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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7 떠나거나 지키거나

Created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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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i가 들은 이야기
Tags
EP07
지역
문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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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주, 논산, 여주, 서울…….
도시마다 지명을 들으면 으레 상상되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만약 이 중에 가 본 곳이 있다면? 그 상상은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사람 또한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삶의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
인간은 자신이 발 디딘 땅 위에 이야기를 축적하고 흔적을 남긴다. 공간에 쌓인 기억은 필연적으로 그 공간에 머무는 인간의 의식 전반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주고받음’은 우리가 도시를 독립적인 존재라고 여기거나 단순히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간주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야기로 감각하는 도시

우현의 인터뷰 영상 캡처. 좌측에는 “’이 지역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자막이 적혀 있다. 우측에는 검은색 후드티셔츠를 입고 안경을 쓴 채 밝은 표정을 띤 우현의 상반신이 보인다.
특히나 대대로 원주에 뿌리내린 토백이¹ 우현은 도시와 수많은 ‘주고받음’을 경험한 사람이다. 원주엔 할머니가 ‘젊었을 때 가던 곳’이나 부모님이 ‘첫 데이트를 하려다 실패한 곳’처럼 손때묻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수많은 이야기를 물려 받으며, 우현은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됐다.

남겨지는 대신 살아가기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우현과 원주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은 하나둘 원주를 떠났다. 높은 크레인과 함께 도시도 변했다. 우현은 원주에서 좋아하던 공간을 이미 여러 차례 잃었고, 그가 원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인 집도 곧 사라질 예정이라고 했다.
아파트 위로 높게 솟은 노란색 크레인. 중앙 하단에는 “이렇게 사라지는 공간이 원주에 지금 되게 많아요”라고 적혀 있다.
만약 우현에게 중요한 것이 지나간 이야기뿐이었다면, 우현은 그저 원주에 남겨지고 말았을 테다. 하지만 우현은 오래된 이야기를 양분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 올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이야기로 공간을 감각하는 우현의 능력이 우현을 원주에 남겨지는 대신 원주에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원주가 변화할 때, 그곳에 있었던 우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원주라는 지역에 돌아왔을 때 변화된 원주를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그런 우현에겐 원주에 돌아올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공간이 있(었)다. 우현이 “오랫동안 묵힌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 표현하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원주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 우현이 수많은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아카데미극장을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으리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문을 연 단관극장이다. 한 번도 화재를 겪지 않았기에 영사실, 필름 등 물품이 잘 유지되어 있어 원주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문화자산³으로 불린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극장의 개관으로 쇠퇴기를 맞이하며 14년간 방치되었다.
원주 시민들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주 시민들의 문화를 책임지던 아카데미극장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만들고, 포럼을 열었다. 여론을 조사하고 다른 지역의 문화 재생 사례를 연구하기도 했다.
극장 안 거울에 “그 안의 시간은 멈췄지만 아카데미는 나를 그 앞에 멈춰서게 했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새로 당선된 원강수 원주시장은 전임 시장이 추진한 아카데미극장 복원 사업을 중단, 극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 공연장과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원강수 시장은 아카데미극장을 복원할 경우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한 후 활용도가 떨어진다 해도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라며 이유를 밝혔다. 시민들은 수년간 진행되던 사업이 일방적으로 중단되자, 민주적인 방식으로 아카데미극장 재생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원주시 조례에 따라 시정정책토론 개최요청을 청구했다. 이후 원강수 시장은 원주시의회에서 충분한 내부 숙의 과정과 공개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보존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단 한 가지도 지켜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요구한 철거와 보존에 대한 시민 의견 수렴은 없었다.

우현이 지키려던 건

공사 가림막이 설치된 아카데미 극장을 배경으로 우산을 쓴 우현의 뒷모습이 보인다. 우현의 시선은 가려진 아카데미극장에 향해 있다.
이처럼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립을 ‘철거 혹은 보존’이라고 간단히 축약할 수 없다. 애초에 건물을 철거하고 보존하는 행위 자체에 옳고 그름이 있을 리도 없다. 하지만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는 아카데미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허물기 위해 평등한 의사 결정 절차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우현을 비롯한 원주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원주를 이해하며 미래를 상상했다. 원 시장은 ‘기억유산’이라 일컬어지는 공간의 철거를 제대로 된 의견 수렴조차 없이 강행했다. 이러한 ‘주고받음’의 부재는 아카데미극장 문제를 민주주의 문제로 환원하며, 이는 원주가 가진 이야기의 존망과도 맞닿는다.
“아카데미극장의 이야기가 지금 한 50페이지라면 한 1,000페이지까지 있을 텐데 아직 전반부만 봤다. 나는 고조도 보고 싶고 마지막 결말까지 보고 싶은데. 그 욕심 때문에 지키는 것 같아요.”
결국 우현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아카데미극장’이라는 공간이 아니다. 그는 장소에 깃든 이야기를 지키고자 했다. 이야기를 통해 원주를 감각하고 이해했으니, 이를 간직하고자 하는 욕심 역시 우현에겐 마땅한 수순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지킨다는 것은 곧 자신의 세상을 지킨다는 의미일 테다. 그것을 지키고 기억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우현을 응원하며, 더 이상 누군가의 이야기가 함부로 무너지지 않는 세계가 오길 바라본다.
¹ ‘토박이’의 강원도 방언 ² 아카데미극장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면 아카데미의 친구들 페이지를 통해 주요 상황과 시민활동 아카이브를 확인할 수 있다. ³ 이현정, 원주 아카데미극장 문화재청장상 수상, 강원일보, 2021.07.07. 박수혁, ‘국내 최고령 단관극장’ 원주 아카데미를 지켜라!, 한겨레, 2021.03.30 김민호, 아카데미극장, 드디어 시민 품으로, 원주투데이, 2022.01.17. 서승진, 원주 아카데미극장 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 국민일보, 2021.05.18허남윤, 원강수 원주시장 “아카데미극장 철거한다”, 강원일보, 2023.04.11홍성욱,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강행… 갈등 해소 실마리 못 찾아, YTN, 2023.10.27 우현은 아카데미의 친구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 소식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안녕 아카데미’ 참고.
우리의 친구이자 아카데미의 친구, 신우현 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Team.MOi가 대신 전해드릴 이야기에 많관부
기획/취재 Team.MOi
촬영 Team.MOi
편집 무니지니
승비
목소리 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