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로 채워진 철문 혹은 셔터 같은 곳 앞에서 한껏 거만한 자세와 표정을 한 무니지니가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빠글거리는 긴 머리와 화려한 옷까지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우리 이진 이래봬도 꽤나 여리다.
우리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함께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은 이야기로 그 모양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Team.MOi의 기획자이자 잡일을 도맡은 금쪽이, 무니지니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효비-
Q.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하는 것처럼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Team.MOi 무니지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Q. 처음 만난 사람이 “Team.MOi가 뭐예요?”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래요?
MOi는.. 영상 프로젝트 팀이고요..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영상을 제작합니다.
Q. … 왜 이렇게 굳어있죠?
그럼 어떻게 말해요. (이렇게까지 뚝딱거릴 거야?) 나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말 잘 못해..
Q. 제가 설정을 잘못 잡았네요.. 그냥 친구한테 얘기하듯이 해주세요. MOi를 시작한 이유! 얘기해 주면 좋겠어요.
되게 치열하게 일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서 하고 싶은 일을 잊어버렸다는 자각이 들었어요. 내 인생이 잘 나아가기 위해서는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겠다고도 생각했고요. 돈을 벌기 위해서 나를 다 쏟아부어서 하는 거 말고, 벌이와 거리를 좀 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이게 가장 중심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혼자서는 뭘 잘 못해요. 약간 외부적인 책임감이 필요한 사람이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할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나와 같은 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의할 만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기반으로 사람을 모았죠.
Q. 같이 하고 싶다고 한 명 한 명 연락이 올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일단 기뻤죠. 같이 해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니까,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냥 열심히 살기만 할 땐 스스로가 도구가 된 기분이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품인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감각이 느껴지니까 내가 나라는 존재로서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만으로 일종의 위안을 받았어요. 나만 되게 별나고 뒤쳐지고 허튼 짓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위안. 그리고 이 인간들이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 ‘잘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는 마음도 들었어요.
Q. 앞으로 팀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실 건가요?
제 생각에는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을 계속할 것 같거든요. 크게 4개라고 생각해요. 제안과 진행과 재촉과 잡일. 이 네 가지 역할.. 앞으로도 유지되지 않을까, 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좀 있어 보이는 말로 제작이라고 옮겨도 될까요?) 아니요, 거창하면 되게 부담스러워요.
-. 나열한 것들 누가 봐도 제작자의 일 아닌지
근데 이제 아시죠 모든 커다란 이름을 맡은 인간들이 사실은 하는 일이 이런.. (그러니까 제작 총괄=잡일 총괄이라고 할 수 있죠) 네 맞아요. 잡일 총괄이죠. 저는 성심성의껏 제 전부인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서 열심히 바닥 레이어의 일을 해내는 데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Q. Team.MOi는 미워할 수 없는 밉상들, 아픈 손가락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거 잖아요. 무니지니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사실 답변을 생각하기 어려워서 조금 다른 길로 샌 건데, 아픈 손가락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당연히 미운 짓 하는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인간들도 입체적이고 다른 인간적인 면이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자기가 정말 나쁘려고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덜 무서운 것 같거든요. 자기도 모르는 새 나빠지는 게 더 무섭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그래서 아픈 손가락이 아닌 사람을 꼽는 게 더 어려워서, 아픈 손가락으로 누구를 못 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어요.
-. 오 이런, 우문현답이네요.
아니요.
Q. 그렇게 단호할 일인가요.
(싫은 듯 곤란한 듯 웃는 이진. 이진은 칭찬 알러지가 있다.)
Q. 인간 무니지니에 대해 질문해볼게요. 당신이 무서워하는 거 세 가지, 사랑하는 거 세 가지를 꼽아본다면?
저한테 질문 리스트를 먼저 공유해줬잖아요. 그중에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두려운 것도 너무 많고 사랑하는 것도 너무 많은 사람이어서요. 엄청난 쫄보+사랑 처돌이 뭐 이런 거기 때문에.. 그리고 뽑는 거, 선택하는 거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무서운 거 세 가지는 ‘이별’이랑 '내 머리나 마음이 딱딱해지는 거’, '자기도 모르는 새 나빠진 마음'. 이렇게가 제가 꼽을 수 있는 두려움 세 가지인 것 같아요. 사랑하는 건 '편안한 존재와 보내는 시간', '사소함' 그리고 '연약함'이요. (당신 되게 말랑한 사람이군요) ..나는 스스로 되게 말랑하다고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봐요.
Q. 무니지니는 살면서 어떤 혐오나 낙인을 겪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워낙 사회에 혐오가 만연하다보니 그런 경험에서 배제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굳이 뭐 밖으로 드러나는 일을 뽑자면, 어떠한 상황 때문에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굉장히 크게 비쳐질 수밖에 없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때.. 정말 욕을 많이 먹었을 걸요.. (큰 웃음) (혹시 몇 가지 생각나는 거 있으면 몇 개만 들려줘요) 진짜 입에 담지 못할 말도 많았는데 기억이 안 나요.
그나마 기억나는 일화는, 욕 먹은 건 아니고 그냥 그만큼 이슈였다는 방증인 건데. 왜 시위대에서 제일 선두에 있던 사람들이 쓰러지면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이 선두가 되잖아요. 나보다 앞서 투쟁하던 인간들이 나가 떨어져서, 타의로 한 5명이 우리 학과에서 선두가 됐던 적이 있어요. 대학 내 성폭력 이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였고 대학 내 익명 어플, 오픈채팅방 이런 것들이 판을 치던 상황이었거든요. 말이 많았죠. 그러다 제가 휴학을 했는데요. 신청서를 제출하자마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
‘매체실 5메갈 대장님 휴학하신다’
퍼펫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한 손으로 눈과 이마를 가리고 웃는 짤
(이 자세로 둘이 한참 웃었다.)
-. 나 그때 소식 들었던 것 같아요.
그정도로 관심이 핫했어요. 그땐 내가 정말 못된 짓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보이는 나의 정체성 때문에 성적인 비하를 포함해서 그냥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어가지고 (웃음) 참 그랬죠.
Q. 그때 당시에는 어땠어요, 기분이나 상태가?
흥분되어 있었죠. 좋은 쪽으로는 아니고요. 되게 버거우면서도 그 버거움을 탈피하는 방법이라고는 진실을 말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굉장히 열정적으로 흥분되어 있었어요. 욕을 먹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니었지만,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되려 인정받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고요. 특히 아까 얘기했던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내가 그 정도인가..?’ 내 친구들도 날 그만큼 인정 안 해주는데 (웃음) 뭐 이제는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데 그때는 힘들었죠. 약 많이 먹고요.(^^)
많이 울고 힘들었지만 그때 너무 소중한 경험을 했죠. 낙인 찍힌 대상들끼리 서로를 비로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보듬으면서 살아남았던 기억이 오히려 훨씬 더 소중하고 길게 남아 있어요.
Q. 만약에 비슷한 시련이 또 닥친다면 어떨 것 같아요?
힘들겠죠. 즐겁진 않겠지. 막 그걸 헤쳐나가는 동안은 힘이 들겠죠. 슬프겠죠. 많이 울고 아프겠죠. 하지만 똑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별로 두렵지가 않아졌어요.
Q. 혹시 더 얘기하고 싶은 거나 답변에 덧붙이고 싶은 부분 있을까요?
죄송한데 제가 뭔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 알았어요. 그냥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당신에게 MOi란?
이거 최악의 질문이다.
-. 유퀴즈 느낌이에요. 뭔 느낌인지 알죠?
자기야
-. 자기야, 유퀴즈야 유퀴즈.
그냥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나한테 MOi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나한테는 좀 커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도 되게 많은 경우에 하기 싫어지잖아요. 이 프로젝트는 그런 두려움이 별로 안 드는 그런 것 같아요.
정옥다예: 마이 리틀 러블리 빅보스
하림: 말랑하지만 꽤나 단단해요
해원: 의외로 멋져요
승비: 멋쟁이 자기님
효비: 이 맛에 MOi합니다.
무니지니: 숨고 싶어요
취재 효비
글 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