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MOi
home
About Team.MOi
home
🎴

EP.05 삼남쑈 2부

Created
2023/10/06
Select
MOi가 들은 이야기
Tags
EP05
노인
이름
기억
유튜브로 이동하기  (동영상 내 버튼 오류 시, 왼쪽 빨간 글씨를 클릭하세요!)
인생은 나으 것이여 46년생 정삼남 DIVA가 MOi에게 들려주신 이야기
  나 이렇게 살아왔당께? 눈물 쏙, 배꼽 슝! 삼남의 기억   찾았다, 내 인생! 비로소 삼남다운 삼남의 오늘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유명 토크쇼에 초대되어 나의 일생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상상을 한다. 무대에 오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삼남은 그런 상상을 남들보다 더 많이 했을 것이다. <삼남쑈>는 그런 삼남의 상상을 작게나마 실현하는 공간이다. <삼남쑈>엔 누구나 알 법한 유명 호스트는 없어도, 연예인 뺨치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무장한 정삼남 할머니가 있다.
정삼남 할머니는 그간 맺혀 있던 아쉬움과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도, 일생일대의 특별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즐거워 보였다.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어느새 78세의 ‘할머니’가 아닌 쾌활한 성격의 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엄청난(!) 재주

정삼남은 다재다능했다. 공부, 노래, 옷 수선 등등 수많은 재주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더랬다. 하지만 그 무수함에 가려져 당신도 미처 몰랐던 최고의 재주는 ‘기르기’가 아닐까? 한 무더기의 다육식물과 물살이 수조 서너 개가 당당한 자태로 그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 반, 풀 반의 거실 정경이 할머니의 기르는 재주를 단번에 실감케 만든다.
거실에 쪼그려 앉아 수조를 바라보는 정삼남 할머니. 화면 아래엔 “(집사의 숙명) 어디 못 가고 집으로 맨날 들어오고”라는 자막이 적혀 있다. 온 집안에 가득한 다육이와 물고기는 할머니가 지갑으로 낳아 마음으로 기른 자식들이다.
할머니는 빼곡한 군집을 이룬 화분과 수조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그는 꽤 많은 시간을 화분과 수조 소개하는 데 할애했고,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애정이 듬뿍 담겨 상기된 목소리는 덤이다. 그전까지 거실 바닥에 앉아 과거를 미련 없이 넘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어떤 것이라도 훌륭히 길러내는 재주를 가진 정삼남 할머니가 물살이와 다육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반짝임이 가득했다.
“행복햐, 이거 기르는 게 내 행복이야. … 내가 너무 좋아해서 하는 거야. 안 좋아하면 어떻게 하겠어. 그렇게 사랑스럽게 하니까 저만큼 크는 거야. 모르겠어, 딴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근데 나만큼은 그래. 다육이하고 고기하고 기르는 게 너무 행복해. 그 키우는 재미로 사는 거야”
정삼남 할머니의 즐거움은 내일을 기를 수 있는 오늘에 있었다.

왓츠 인 삼남쓰 옷장 - 내 맘대로 해요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깔을 자랑하는 주인님(?)들과 화려하게 치장을 한 베테랑 집사의 모습은 어쩐지 닮아있었다. 우리는 삼남 할머니에게 옷장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우리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하면서도 안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구입처가 절로 궁금해지는 옷들이 가득한 옷장을 연 채,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삼남 할머니. 화면 아래엔 “더 안 봐도 알 거 같음”이라는 자막이 적혀 있다.
할머니의 인터뷰 룩에서 예상됐다시피, 고상한 오크 색 옷장과 확연히 대조되는 색감의 의상이 카메라를 반겼다. 다육이와 물살이를 쏙 빼닮은 아찔한 무늬와 화려한 색들이 옷더미에서 소매만 내민 채 그 존재감을 뽐낸다.
화려함이 유일한 통일성인 이 옷장에도 기준은 있다. 바로 “정삼남 마음”대로다. 정삼남 할머니의 옷장 속엔 남의 잣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웃에게 나눠 주려 한편에 쌓아놓은 옷 무더기에서 그의 성품을 엿볼 수는 있었다. 사시사철 김치를 담글 때마다 동네 독거 할머니들에게 꼭 김장 김치를 돌린다는 정삼남 할머니다.

서로를 기른다

기르는 재주를 단순히 자식 키워내는 시기에만 발휘하기엔 아까웠는지, 삼남 할머니는 25년째 인근 대학 학생들을 위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집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삼남 할머니. 화면 아래엔 “25년 경력 하숙집 주인장입니다”라는 자막이 적혀 있다.
돈벌이를 위해 시작했다는 이 일은 이젠 정삼남의 일부가 됐다. 할머니는 매일 오후 4시 40분, 저녁 준비를 위해 하숙생들과 카톡을 주고받는다. 그는 이 사소해 보이는 의례를 ‘즐거움’이라 표현했다.
어쩌면 식사 확인 카톡은 성인이 된 후 줄곧 무언가를 길러내기만 했던 할머니에게 돌봄 받는 기분을 선사하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인사말이 모여 어느새 그들은 모자의 호칭으로 엮였다. 소통은 서로를 돌보게 하는 작은 한 걸음이다.
정삼남 할머니가 하숙생들과 나눈 카톡 캡처 2장. 첫 번째 캡처는 단체 채팅방 화면으로, 할머니가 저녁을 먹지 못하는 하숙생들에게 “잘 챙겨먹고 다니시게~~~ / 날이 추워지니 모두들 건강조심하고 ~~~”라는 문자를 남긴 내용이다. 두 번째 화면 캡처는 과거 하숙생이 삼남 할머니에게 보낸 문자로, “하숙집에서 살았던 시간 너무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 서울 갈 땐 연락드리고 찾아뵐게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인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

노인에게 삶은 주름진 선물 하나를 안겨 준다. 바로 자기 확신이다. 인간은 자신을 살게 해준 가치를 조합해 생의 말미에 목소리를 얻는다. 삼남 할머니가 얻은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딴 거 다 필요 없어. 남한테 욕 안 얻어먹고, 그냥 재밌게. 그냥 즐겁게. 그냥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어.”
위 인용문 화면.
그의 청년 시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당시 동년배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삼남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상남의 특별함은 삶의 전체가 아닌 삶의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낙천성과 베푸는 습성,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겐 삶의 허무를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오늘을 재미있게 살고야 마는 앙큼한 재주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친구, 정삼남 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Team.MOi가 만난 또 다른 할머니 이야기는 2023년 10월 13일(금) 오후 10시에 공개됩니다
기획/취재/촬영 Team.MOi
편집/글 해원